
요약
·범정부 인구정책 TF에서 고령자 고용 활성화를 과제로 제시했다
·인구 감소 추세 속에서 정년 연장은 명분이 있다
·그러나 재계 반대와 청년층 반발을 넘어서야 한다
[파이낸셜뉴스] 직장인 젠 토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. 현재 정년은 60세다. 이걸 더 높이자는 취지다. 범정부 기구인 4차 인구정책 태스크포스(TF)는 10일 고령자 고용 활성화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.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.
◇정년을 연장해야 할 이유
명분은 차고 넘친다. 우리나라 출생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.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 최저점은 2021년 0.86명에서 2024년 0.7명으로 더 떨어졌다. 아이를 낳지 않으니 인구가 주는 건 당연하다. 통계청은 대한민국 인구가 2020년 5184만명에서 2070년 3766만명으로 급락할 걸로 본다. 2070년 인구는 1979년 수준이다.
경제는 노동력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. 과거 1970~90년대 고도성장은 인구 보너스 효과를 톡톡히 봤다. 거꾸로 인구가 줄면 경제엔 마이너스다. 생산연령인구(15~65세)는 2020년 약 3738만명에서 2070년 1737만명까지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. 이는 잠재성장률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. 인구 곧 소비자가 줄면 경제는 물먹은 스폰지마냥 활력을 잃는다.
젠 토토을 말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변수가 재정이다.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은 치명상을 입는다. 보험료 낼 사람은 푹푹 주는데 보험료 탈 사람들은 떼구름처럼 모여들기 때문이다. 국민연금을 타는 나이는 2023년 63세, 2033년 65세로 높아진다. 만약 연금 보험료 내는 나이를 더 높이고(예컨대 60세에서 65세로), 타는 나이를 더 늦추면(65세에서 70세로) 재정 펑크 걱정을 덜 수 있다.
경제성장과 나라살림을 책임진 정부 눈엔 젠 토토이 신의 한 수다. 2020년 기준 베이비붐 세대(1955~1963년생)는 710만명에 이른다. 고도성장 시대에 성장한 이들은 학력도 높고 숙련도도 높다. 정부는 이 소중한 인력풀을 더 오래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. 그래서 자꾸 젠 토토 카드를 내민다.

◇노인천국 일본은 어떤가
고령화는 일본이 선배 격이다. 자연 젠 토토 대책도 우리보다 앞섰다. 진작에 인구 감소를 겪은 일본은 작년부터 정년을 70세로 높였다. 70세까지 정년 연장, 정년 폐지, 70세까지 계속고용을 제시한 뒤 기업에 선택권을 줬다.
앞서 일본은 지난 2013년 희망자 전원에게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했다. 한국 정부가 참고하려는 게 바로 이 제도다. 일본 전문가인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교수(융합일본지역학부)는 지난해 4월 국가미래연구원(IFS)에 기고한 글에서 "저출산·인구고령화로 인해 젊은층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 확대 없이는 일본 경제가 성장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"고 분석했다.
◇현대차, 삼성전자의 경우
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7월 숙련 재고용제 도입에 합의했다. 그동안 해오던 시니어 촉탁제의 이름을 바꿨다. 정년 퇴직한 숙련 노동자를 회사가 계약직 등으로 재고용하는 게 핵심이다. 원래 노조는 아예 젠 토토을 못박으려 했다. 하지만 회사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. 그래도 재고용제는 임금을 덜 받는 대신 정년을 사실상 연장하는 효과가 있다.
한국 간판기업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시니어 트랙을 운영하기 시작했다. 지난해 인사제도 개편에서 밝힌 내용이다. 정년 뒤에도 우수 인력을 활용하자는 취지다. 언론은 개편안 중에서 '30대 임원도 나올 수 있다'는데 주목했지만 길게 보면 시니어 트랙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변화다.

◇젠 토토 뭐가 걸림돌인가
젠 토토은 두 군데서 기를 쓰고 반대한다. 먼저 재계다. 지난해 9월 대한상의는 국내 대·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'중장년 인력관리에 대한 기업실태'를 조사한 결과를 내놨다. 2016년 정년이 60세로 높아진 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는 조사였다. 중장년 인력관리에 '어려움을 겪고 있다'는 응답이 89%에 달했다. 이들은 높은 인건비(47.8%, 복수응답), 신규채용 부담(26.1%), 저성과자 증가(24.3%), 건강·안전관리(23.9%), 인사적체(22.1%) 등을 어려움으로 꼽았다.
노동계에서 요구하는 정년 65세 연장에 대해선 약 72%가 부정적으로 답했다. '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젠 토토은 시기상조'라는 답변이 40.7%로 가장 많았다.
재계가 젠 토토에 손사래를 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. 2013년 박근혜정부와 국회는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정년을 60세로 높였다. 개정안은 2016년부터 시행됐다. 당시 임금피크제가 이슈가 됐다. 재계는 젠 토토을 수용하는 대신 임금피크제 의무화를 요청했다. 고령자 인건비가 크게 늘까봐서다. 그러나 개정안은 "노사 양측이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"는 선에서 두루뭉술 마무리됐다. 재계는 정년을 65세로 높일 때 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한다.
◇청년실업 지금도 높은데
사실 재계 반대야 정부와 정치권이 슬쩍 뭉개면 그만이다. 하지만 청년층 반발은 대통령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.
고령자 채용이 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건 상식이다. 상식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다. 국책 한국개발연구원(KDI)은 2020년 5월 '젠 토토(60세)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'라는 보고서를 냈다. 이에 따르면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젠 토토의 수혜자가 1명 증가하면 실제 고령층 고용이 1명 늘었다. 거꾸로 청년층 고용은 1명 줄었다. 대기업처럼 좋은 일자리를 놓고 고령층과 청년층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.

◇세대 갈등 시한폭탄
지난 2013년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할 때 청년들은 어어 하다 당했다. 그때 정치권은 유권자 중추세력으로 등장한 50대 베이비부머 직장인들이 곧 정년(55세 전후)에 도달한다는 걸 알았다. 그래서 여야가 서둘러 선심을 쓴 게 60세 젠 토토이다. 이걸 65세로 높이면 기득권 강성 노조만 신바람이 난다.
그로부터 9년이 지났다. 지금 2030 세대는 올해 대선판을 좌우할 만큼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. 베이비부머 표만 보고 65세 젠 토토을 말하는 순간 청년표는 다 날아간다고 봐야 한다.
4차 인구정책 TF는 오는 3~6월 작업반 논의를 거쳐 7월 이후 총괄대책과 분야별 대책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. 발표 시기를 3월 대선과 5월 새정부 출범 이후로 잡은 것은 현명해 보인다.그러나 작년 12월 청년층(15~29세) 체감실업률은 19.6%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. 벌써 입춘이 지났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춥다.젠 토토은 언제 발표하든 청년층의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한다.
paulk@fnnews.com 곽인찬 주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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